INFOMATION

Virtue of Moo Deung (the ideal world), Part of Lee Cheol-gyu’s story

 Lee Cheol-gyu’s art belongs to the Bu Jeuk Bul Ri (no separation and no connection). His art doesn’t divide between this world and the next world. It exists simultaneously. All things such as our everyday life, living, will and appreciation become just one in his world. Unadorned pine trees and fish, which are demonstrated by the Lee Dynasty’s unknown artists of the past, are alive in Lee cheol-gyu’s brush. That is, by the genes impressed upon the body from conception. The brilliant Lee Cheol-gyu never used art as an escape from this world. He saw his art as a natural behavior which made his wife and son happy, company at night in the past when there was no artificial light, and as a naive mind to overcome the burden of the fearful mind the approaching future with the present pleasure.

 

To understand Lee Cheol-gyu’s technique, we need to see his art path. In his early career, he was a comparatively well-known advanced technician. After imitating and sketching for a few decades, he traveled around the world sketching scenery. He painted every person he met as if he had written a poem in the Ko Eun’s collection of poems (Man In Bo).

 

Secondly, he has made an effort over several decades to find his own form. His pursuing form has the same purpose as the modern interpretation for the tradition which harmonizes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with Purism coming from the Western modernism and the brush touch of the smell of Indian ink (Mook Hyang) stemming from the embodiment of the oriental spirit. Over several years Lee Cheol-gyu began to ponder what the most important element in art was. The foundation of his thinking was that there is no meaning in the form which is separated from his life because pursuing the form itself will snatch away his life. So he asked himself whether it is possible to mate his life with his form. He believed that pursuing the form itself without his life was only a blind aim. Whilst pursuing his life without the form was shameful. For several years now he has pursued existential art as his real theme. The real purpose of this exhibition is to reveal his life in which he now lives. The exhibited works can be compared to the depth of Buddha’s life, which is so rarely found even in long ascetic lives.

Gallery Artside Curator Lee Jin-myeong

무등(無等)의 덕목, 이철규 이야기의 일부분

이철규의 예술은 차안과 피안의 나눔 없는 부즉불리의 세계인 동시에 삶을 위한 예술이고, 일상과 생활과 감상과 의지가 한 몸이 되는 세계다. 소나무의 질박함, 그 옛적 조선의 무명씨 예술가들이 발휘했을 그 삶의 광희(狂喜)가 물고기로 변해 이철규의 손끝에서, 육신에 각인되어있는 유전자에 의해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 찬란한 부즉불리의 정신은 결코 이생의 도피처로서의 예술이 아니다. 아내나 자식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그저 행했던 자연스러운 행동양식이자, 전깃불 없던 긴 밤의 동무이자, 다가오는 미래의 불안의 무게를 현재의 즐거움으로 극복하려는 수수한 마음이다.

이철규의 테크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예술노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철규는 초기에 비교적 널리 알려진 하이 테크니션이었다. 동양화의 임모나 사생의 기본을 십 수년 다진 뒤에, 전국 산수를 유람하며 산수화를 그렸다. 마치 만인보 시를 쓰듯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들의 인물을 살펴 그렸다. 둘째, 자기 형식의 구축을 위해 십 수년을 매진했다. 그가 추구한 양식은 유불선과 서구 모더니티가 갖는 순수주의, 동양정신의 체현인 묵향의 서필이 한데 모여 조화를 이루는 전통의 현대적 해석이 구현하려는 목적이었다. 이철규는 그런데 근래 몇 년 전부터 예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기의 삶과 분리된 형식에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라는 대전제가 바로 그것인데, 형식 그 자체만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은 자기 삶을 앗아간다. 그래서 그는 자기 삶과 자기 형식이 일치될 순 없을까 물었다. 자기 삶이 빠진, 단순한 형식만의 추구는 맹목이요, 또 형식미가 결여된 채 자기 삶만을 주장하는 것은 치졸하기 짝이 없다. 바로 실존적 예술의 확립이야말로 최근 몇 년간 이철규가 천착했던 진정한 주제의식이다. 그리고 앞서 서두에서 길게 설명했던 지금 여기에 사는 자기 삶의 솔직 담백한 드러냄이 이번 전시의 진면목이다. 이번 작품은 그가 오랜 여정을 지나오며 겨우 찾은 불타세존 같은 삶의 깊이라 할 수 있다.

갤러리 아트사이드 큐레이터, 이진명